글쓴이 :     송영주 (sampgon) 등록일 :     2004.01.15 조회수 :     10501
제목 :     흰계란과 황색계란이 다른 이유?
[김선미기자의 현장칼럼]흰달걀 실종사건
[건강/생활] 2003년 04월 24일 (목) 16:53

취재는 늘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의문에서 비롯됐다.
어린 시절 그 많던 흰색 달걀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재래시장, 대형 할인점, 고급 슈퍼마켓에서도 흰색 달걀은 좀체 보이지 않았다.

흰색 달걀을 찾아보리라.

● 이마트에서 흰색 달걀을 발견하다그날은 15일이었다. 서울 은평구 이마트 응암점에는 갈색 달걀들이 저마다 다른 이름표를 달고 수북이 진열대 위에 올라 있었다.

무게에 따라 분류된 왕란(달걀 개당 무게 68g 이상) 특란(60g 이상) 대란(52g 이상) 등을 비롯, 청정란 홍화란 산소란 녹즙란 유정란 영양란 등 각종 ‘브랜드 달걀’ 또한 약간의 농도 차이만 빚어낼 뿐 모두 갈색이었다.

흰색 달걀은 진열대 한 모퉁이에서 일부 발견됐다.

‘눈부신 하얀 달걀’이라는 브랜드 이름의 이 흰색 달걀을 보고 가정주부 안소현씨(56·서울 은평구 녹번동)는 반경 3m 내에서는 충분히 들릴 목소리로 “어머, 추억의 흰색 달걀이네”라고 감탄 섞인 혼잣말을 했다.

10개 들이 흰색 달걀 포장들을 부지런히 쇼핑 카트에 집어넣던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음식점 ‘콩두’의 주방장 류창호씨(31)는 “20일 부활절 달걀 요리에 사용할 흰색 달걀을 사러 왔다”고 말했다. 류씨는 이날 새벽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에서 흰색 달걀을 구하지 못해 이마트까지 오게 됐노라고 설명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대형 할인점에서 우연히 만난 주부, 주방장, 기자 이렇게 세 사람은 도대체 흰색 달걀과 갈색 달걀의 차이는 무엇이며 흰색 달걀이 요사이 왜 통 보이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대화를 나누고는 헤어졌다.

● 부활절에 반짝 부활한 흰색 달걀할인점에 흰색 달걀이 소량이나마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부활절 덕분이었다.

‘눈부신 하얀 달걀’의 판매 회사인 조인주식회사는 평소에는 흰색 달걀을 전혀 취급하지 않지만 20일 부활절 특수를 기대하고 올 들어 처음으로 14일부터 19일까지 흰색 달걀 6만7690개를 특별 출하해 팔았다. 이 회사는 같은 기간 흰색 달걀 판매 수량의 25배에 달하는 171만4935개의 갈색 달걀을 판매했다.

김종문 유통사업부장은 “흰색 달걀의 개당 가격을 갈색 달걀(21일 현재 특란 기준 70원)보다 3∼5원 낮게 책정해도 통 팔리지 않는다”며 “부활절이 지나면 또다시 흰색 달걀에 대한 시중 수요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돼 출하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평소에는 흰색 달걀을 찾는 곳이 거의 없어 달걀 껍데기를 깨뜨려 내용물만 사용하는 빵집 등에 애써 헐값에 넘긴다는 것이다.

농림부 축산경영과 이흥철 사무관도 “부활절을 앞두고 한 가톨릭교회가 흰색 달걀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을 문의해와 조사했더니 전국의 달걀을 낳는 닭(산란 종계) 4800만 마리 중 흰색 달걀을 낳는 흰색 닭은 전체 닭의 1.6%인 50만 마리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흰색 달걀과 갈색 달걀의 차이는 묵은 체증처럼 오랫동안 지속된 의문에 비하면 의외로 싱겁게 밝혀졌다. 흰색 달걀은 흰색 닭(흰색 레그혼 종)이 낳는 알이고, 갈색 달걀은 갈색 닭(로드 아일랜드 레드 종, 뉴햄프셔 종 등 품종간 교배로 만들어진 닭)이 낳는 알이었다. 닭 깃털의 색을 결정하는 색소가 달걀 껍질의 색도 결정한다. 현재 국내 산란 종계는 거의 전량 수입된다.

● 산란농장에서 달걀들의 대화를 듣다그러고 보니 흰색 달걀을 낳는 흰색 닭을 본 지도 꽤 오래된 것 같다.

17일 낮 찾은 충남 당진군 정미면의 봉성농장은 인적이 드물고 바람이 맑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처음 만나는 이재규 농장장(41)은 시골의 친척처럼 반가운 표정으로 마중 나왔다가 갈색 닭 16만 마리와 흰색 닭 4만 마리가 살고 있는 닭장으로 안내했다.

세균 전염을 예방하는 옷을 덧입고, 갈아 신은 고무신을 소독약이 담긴 통에 푹 담갔다가 뺀 뒤 닭장 안으로 들어서자 닭 고유의 체취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천장까지 닿은 높이 4단짜리 닭장은 12열로 죽 늘어서 있었다. 길이 85m인 한 열은 다시 162개 칸으로 나뉘어 있다. 5마리의 닭이 비좁게 공생하는 각 칸에서 닭들은 10㎝ 폭의 닭장 창살 사이로 앞다퉈 목을 내뺀 채 분주히 사료를 먹었다.

사료가 담긴 선반 바로 밑 선반에는 닭들이 이제 막 낳은 달걀들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아다지오’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닭장 속 닭은 볏짚을 깔고 앉아 알을 품지 않는다. 잠에서 깨어난 오전 8시∼낮 12시에 그저 배설하듯 15도 각도로 경사진 선반으로 달걀을 떨어뜨린다.

달걀을 낳는 닭과 관찰자인 기자는 소통했을 수도 있고, 또 아닐 수도 있다.

취재한 닭장 속 세상을 나름의 방식대로 재구성해보기로 했다.

갈색 달걀(이하 갈색):저 신문기자는 너에 대해 무척 알고 싶어하는 눈치야.

흰색 달걀(이하 흰색):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향수 때문이겠지. 1960, 70년대에만 해도 흰색 달걀의 수가 갈색 달걀의 수보다 많았다고. 갈색 달걀의 수가 많아진 것은 불과 1980년대 초반부터야.

갈색: 현재가 암울할수록 영화로웠던 과거만 곱씹게 마련이야. 이제 사람들은 우리 갈색 달걀만 좋아한다는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해. 얼마 전 한 양계업자는 “이대로 가다가는 앞으로 3년 이내에 국내에서 흰색 달걀이 영영 사라질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어.

흰색: 우리 흰색 달걀들의 생존을 위협하게 만든 것이 바로 그 ‘인간의 과거에 대한 향수’인 것은 아이러니야. 토종 재래닭이 낳던 갈색 달걀을 그리워하던 사람들은 외국산 갈색 닭이 낳는 갈색 달걀을 먹는 것으로 과거의 추억을 보상받으려 했으니까(조인주식회사 한재일 이사).

갈색:조직적이고 유기적인 세상사를 센티멘털한 감상으로만 해석하면 패배하기 쉽지. 일반적으로 크기가 큰 것을 좋아하는 국내 소비자들은 너희 흰색 달걀보다 평균 2g 정도 더 무게가 나가는 우리 갈색 달걀을 선택한 거야(강원대 사료생산공학과 이규호 교수). 1970년대 곧잘 백혈병에 걸려 앓던 흰색 닭이 낳는 흰색 달걀은 왠지 초라하고 영양이 부실해보였으니까.

흰색:감상적인 것은 오히려 인간이야. 갈색 달걀이 흰색 달걀보다 영양이 풍부할 것이라는 사람들의 호두껍데기 같은 선입견이야말로 비과학적이지. 흰색 달걀과 갈색 달걀의 유의미한 성분·영양·맛의 차이는 전혀 없어. 닭 사료의 97%(연간 1500만t)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국내 양계상황에서는 갈색 닭보다 명백하게 사료 효율이 높은 흰색 닭 사육이 오히려 장려돼야 해. 양계 전문가들은 현재 99 대 1인 갈색 닭과 흰색 닭의 국내 사육 비율이 50 대 50으로 바뀌어야 국가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고 있어(축산기술연구소 이상진 가금과장). 또 1990년대부터 성행하는 급성 세균 감염증인 가금티푸스에 대한 저항력은 흰색 닭이 갈색 닭보다 뛰어나다고.

미국 아칸소대 크레이그 N 쿤 교수(가금 영양 전공)가 지난해 ‘커머셜 치킨 미트 앤드 에그 프로덕션’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흰색 닭의 사료 효율(닭의 달걀 생산량을 사료 섭취량으로 나눈 값)은 49.3%로 갈색 닭의 사료 효율 44.4%보다 높게 나타났다.

갈색:달걀 낳는 닭의 일생을 고찰할 때 닭 나이 1주일은 사람 나이 1세와 비슷하다고 해(축산기술연구소 김상호 축산연구사). 나도 곧 부화장에 갔다가 몸값 600원에 산란농장으로 팔려가 부화 후 76주까지 53.7㎏의 사료(1만2500원 상당)를 먹으며 320개의 달걀(개당 70원)을 낳아 2만2400원의 수입을 주인에게 안겨주겠지. 그 다음에는 이 세상에서의 소명을 마치고 소시지의 원료가 되기 위해 몸값 200원에 도계장으로 팔려가는 거야. 짧은 삶에서 너 잘났네, 나 잘났네 옥신각신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니. 흰색 친구, 힘을 내도록.

●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축산기술연구소가 2000년 전국 주부 500명을 대상으로 달걀 껍데기 색깔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한 설문 결과에서 응답자들은 갈색 달걀(65.4%), 관계 없음(29.0%), 흰색 달걀(5.6%)의 순으로 답했다.

기자가 만난 달걀 생산자들은 “소비자들이 흰색 달걀을 외면해서 생산하지 않는다”고 했고, 소비자들은 “흰색 달걀을 사려 해도 파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달걀 색깔에 관계없이 달걀을 선택한다는 29.0%의 응답자가 흰색 달걀을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시장 여건이 조성될 경우 흰색 달걀을 구입하는 ‘잠재적 흰색 달걀 수요자’일지 궁금하다. 한없이 사소할 수 있는 ‘흰색 달걀 실종 이유’를 추적하면서 결국은 사람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는 작은 진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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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출처: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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